최광수의 통영이야기 67 - 가는개 마을
미륵도 미수동에서 산양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세포고개다. 고개 아래에는 세포마을이 있는데, 100가구가 채 되지 않는다. 원래 이름은 가는개마을이다. 마을 앞에 횡으로 길게 뻗어 들어온 바다 모양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세포고갯길에서는 마을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고갯마루에서 버스를 내려 마을로 걸어 내려가노라면 탄성을 지르게 된다. 이렇게 아늑하고 이쁜 마을이 있었단 말인가.
보기 드문 숲 속 마을이다. 숲 속에 들어앉은 마을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숲을 보듬고 있다. 널찍널찍 떨어져 앉은 집들과 그 사이에 자리 잡은 텃밭, 그리고 빈틈 없이 자리 잡은 나무들로 인해 마을 전체가 푸르다.
특히 과실수와 조경수들이 눈에 많이 띈다. 뽕나무, 비파나무, 보리수나무, 매화나무에 열린 오디, 비파, 뽈똥, 매실이 나그네의 눈과 입을 흐뭇하게 한다. 이에 뒤질세라 꾸지뽕과 산딸기도 숲 속 곳곳에서 얼굴을 내민다.
마을 곳곳에 종려나무도 많다. 한때 종려나무를 키우면 화환용 부재로 쓰이면서 돈이 되었는데, 플라스틱으로 대체되면서 쓰임새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대체 수종으로 올리브 나무를 시범 재배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운영위원장 김부린 옹의 얘기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어진 마을에서 대체작물을 개발하고 있다니 조금 의외다. 개발, 도전 이런 단어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내가 살짝 부끄러워진다. 사실 이런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마을벽화 사업과 주민들만의 시집 '가는개마을의 노래' 만들기, 전문 극단과 함께한 연극무대 오르기 등이 가능했을 터다.
극단 벅수골의 헌신적인 땀과 노력이 있었지만, 노인들밖에 살지 않는 마을에서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신기했는데, 또 하나의 비결은 주민들의 단결이었다. 김부린 옹이 주민들의 단결과 화합을 이야기할 때 배어나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술과 담배를 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도 가는개마을의 독특한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한마디로 '잘' 사는 마을이다.
이런 가는개마을의 저력은 '월성정씨영세불망비' 이야기에서 이미 실감할 수 있다(최광수의 통영이야기 제32화, '세포고개 귀신 이야기' 참조). 주민들이 출연한 연극도 이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단합되고 부지런한 마을이라면, 머잖아 아기 울음소리가 다시 들리지 않을까. 농촌체험휴양마을 사무장의 안내로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보면서, 청년 실업을 해소하고, 새로운 경제를 일굴 진정한 창조경제는 농어촌에서 찾아야 한다던 어느 분의 말씀을 떠올려 본다.
담벼락에 새겨진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생생한 시구에 눈이 호강하고, 마을 숲에서 뿜어내는 맑고 향기로운 공기를 마시며 가슴이 호강하고, 길가의 열매들로 입이 호강하고, 훈훈한 마을 분위기에 마음이 호강한 산책이었다.